김중업은 한국 근현대 건축가의 거장이다. 그의 이름을 딴 김중업박물관은 그가 지은 건물을 리모델링한 것이다. 본래 ‘유유산업’의 공장이던 이 부지는 고려시대 태조 왕건에 의해 지어진 ‘안양사’ 터 위에 자리 잡았다. 재밌게도 리모델링 공사를 착공하다가 매장된 유물이 발견되어 발굴조사에 들어갔다고 한다. 공장건물이 지어진 1959년 당시에는 문화재 지표조사가 선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유물들이 건물 밑에 오랫동안 묻혀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김중업박물관은 고대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가 켜켜이 쌓여있는 한국사의 지층이 되었다.

안양문화재단은 이러한 의미를 보존하기 위해 과거 공장이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굴뚝을 보존하고, 안양사지관을 건립해 고려시대 안양사지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전시했다. 또 박물관 한편에는 경기도문화재인 경기도 삼층석탑이 자리해 천년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뒤섞여있는 모양새를 이루었다.

김중업은 ‘건축’을 인간이 빚어놓은 엄청난 손짓이며 또한 귀한 싸인이라고 정의했다. 그의 뜻을 반영한 듯 본 건물도 공장으로 쓰였다고 보기엔 아까울 정도로 개성이 넘친다. 건물 귀퉁이를 잘라 박종배의 조각을 넣고, 기둥역할을 하는 구조물을 외부로 노출시켜 내부공간을 활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김중업 박물관은 한국 현대건축의 시작점으로 새겨진 건축가 김중업이 설계한 공장건물과 조각가 박종배의 작품이 남아 있어 건물 자체만으로도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고, 또한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고려시대 안양사의 실체를 부분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공간이다.

한국 건축의 태초인 그는 1952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유네스코 주최 제1회 세계 예술가 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것을 계기로 세계적인 거장 르 코르뷔지에를 만나게 되어, 한국인 최초로 그의 건축 연구소에서 실무적인 일을 하며 건축가로서 역량을 키웠다. 서양의 현대 건축을 직접 체험한 그는 3년 뒤 한국에 귀국해 시대를 앞선 건축물들을 만들어냈다. 치열한 작가의식을 가지고 끝없는 본원적 가치탐구를 추구한 그의 건축은 본인의 영혼이 함축된 표현물이자 강렬한 작품성을 지니고 있다.

전시관 안에는 건축 설계도와 건축 모형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그가 가장 아꼈던 건축물이라는 을지로 ‘서산부인과’는 ‘생명을 담는 그릇’이라는 말처럼 다양한 곡선을 건물 안에 끌어들여 요소요소가 자궁이나 고환의 모습을 닮도록 만들었다. 이는 생명의 원천을 그려내는 김중업의 독특한 건축 조형언어를 대표하는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보아도 이색적인 이 건축모형은 실제 건축 모양과는 조금 다르다. 당시에는 그의 조형성을 표현하는 ‘곡선’을 만들어내기에는 시공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의 평면도에서는 건축물이 노출 콘크리트로 되어있는데, 당시 한국에서는 거푸집을 만들 합판이 존재하지 않아서 나무 목재를 이어 벽체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의도대로 지어지지 않은 것에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술적 한계로 인해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치지 못했던 김중업은 광주대단지사건 당시 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정부의 미운털이 박혀 71년 프랑스로 강제출국 당했다. 그의 대표건축물인 삼일빌딩의 건축료도 받지 못한 채였다. 그로인해 근대문화재로 여겨져야 마땅할 건축물들은 관리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세월의 풍파 속에서 허물어져 가고 있다. 몇 채 남지 않은 건물만이라도 영원히 박제하고 싶은 심정으로 박물관을 나와 거닐다가, 그래도 그의 정신만은 관람자들의 마음속에 영속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중업박물관은 안양시 만안구 예술공원로에 위치해 있으며, 상설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허민지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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