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연일 영하 10도가 넘는 한파가 계속되면서 집집마다 난리다. 보일러가 터졌네, 세탁기가 얼었네 하면서 꽁꽁 추운 겨울의 애로사항을 이야기한다. 우연히 작년부터 겨울마다 사이판 여행을 하게 됐다. 여행이라기보다 ‘한달 살기’의 일정으로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특히 이번에는 중학교 입학하는 아들이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취득했던 성과까지 있어서 뿌듯하다. 다들 왜 매년 똑같은 여행지를 가냐고 묻는다. 나는 “시골집을 여행하듯 내가 알고 있는 동네로 가는 것 같아서 좋다”고 대답한다. 골목골목 무엇이 있는지 상세히 알고 있어 생활이 편하고, 적당한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따뜻한 섬나라 사이판. 이곳은 매년 올 때마다 만족스럽다.

그런데 올해는 칠순이 된 친정 부모님을 위한 효도 여행까지 더해지게 되었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않으신 부모님은 처음으로 여권을 만들었다. 기껏 제주도 갈 때도 비행기 타는 게 곤혹스럽다면서 비행기 타는 것을 싫어하셨다. 사이판을 겨울마다 가는 두 딸의 권유에 못 이기시며 끌려(?) 오셨다. 그런데 웬걸! 여행 첫날부터 사이판의 기후와 음식과 문화에 적응이 되어버리셨다. 바로 한국의 70년대, 80년대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시골길 풍경과 온화한 미소의 사람들 때문이다. 어딜 가나 인사를 하는 친절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드는 낯선 경험부터 놀라우신가 보다. 힘든 일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신기하다고 한다.

“아빠 겨울마다 사이판에 올까?” 라고 말했더니 싫지 않은 눈치다. 심지어 5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사이판 옆에 있는 ‘티니안’ 이라는 섬을 가보았는데 모든 경험을 즐거워하신다. 사이판에서 20년, 30년 전 정착한 한국 사람들을 보면서 왜 자신은 외국으로 나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아쉬워한다. 용감하게 도전하면서 자신의 터전을 해외에서 일군 사람들의 이야기에 감동을 느끼신 듯하다. 감기나 비염 등을 앓았던 조카는 이곳의 자연 때문에 일주일 새에 건강해졌다. 짧은 소나기가 내린 후 하늘에 떠 있는 무지개는 황홀감을 준다. 매일 똑같은 자연 풍광을 보는 것만으로도 질릴 틈이 없다. 바다 색은 뛰어들고 싶을 정도로 영롱한 옥빛이다.

물론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제일이라는 소중함을 갖고 사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열린 마음과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은 삶에서 배워야 할 태도다. 제주도 가는 것도 귀찮고 비행기 타는 게 갑갑하다면서 죽을 때까지 비행기 한 번 안 타겠다는 부모님은 사이판 여행으로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게 되었다. 나만 그동안 좋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는 생각에 죄송한 마음이 든다. 부모님은 이제 겨울마다 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다.

여행도 연습이 필요한가 보다. 나이가 들수록 낯선 환경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다. 집을 떠나는 게 무서운 일처럼 여겨진다. 집이 가장 편하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모님은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이 아직도 있구나’를 알게 되었다. 어딜 쳐다봐도 푸르른 나무와 숲,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있는 열대의 나라에서 세상 구경하는 게 즐거운 일임을 깨달았다. 나이 칠십이 되어서야 말이다.

김소라 기자  sora77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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