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9월에 진행된 ‘정조대왕 능행차’의 재현은 해당 콘텐츠가 훌륭한 문화 관광 자원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할 수 있다. 흔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장헌세자, 추존 장조)의 현륭원을 전배하러 가는 길을 원행 혹은 능행으로 부르고 있다. 둘 다 의미는 같지만 장조로 추존이 되기 전까지는 원행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표현이고, 지금은 융릉의 능호를 받았기에 능행이라는 부르는 것이 맞다. 이는 1795년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현륭원을 전배하러 왔을 때 남긴 기록인 <원행을묘정리의궤>를 통해 알 수 있는데, 앞 글자인 원행은 사도세자의 현륭원 전배를 의미한다.

<화성성묘전배도>. 정조가 수원 화성에 도착한 이후 첫 번째 공식 일정으로 팔달산 아래 수원향교 대성전을 전배한 그림이다.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정조는 왕으로 즉위한 이후 총 13차례에 걸쳐 원행길(=능행길)에 나섰는데, 재위 기간을 고려하면 매년 한 차례씩은 방문했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사도세자의 수은묘는 양주 배봉산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왕으로 즉위한 정조는 아버지를 장헌세자로 추존하는 한편 수은묘를 영우원으로 높이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이후 1789년 박명원의 상소를 기점으로 수원부의 읍치인 화산으로 천봉이 결정됐다. 이때 영우원은 현륭원으로 이름이 바뀌게 되고,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싶었던 정조의 세심함은 화려한 현륭원의 조성으로 이어졌다. 이를 알 수 있는 것이 현륭원(=융릉)의 석물로, 당시 원의 묘제에서는 세울 수 없는 무인석이 세워지는가 하면, 정조의 건릉보다 더 화려한 능침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 <화성행행도>에 그려진 정조의 원행, 글이 담아내지 못한 흔적

이처럼 정조의 원행은 <원행을묘정리의궤>의 기록을 통해 상세하게 알 수가 있는데, 가히 기록의 나라 조선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원행을묘정리의궤>와 함께 주목해볼 것이 <화성행행도>라고 불리는 회화 그림이다. 지금으로 치면 사진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는데, 글이 담아내지 못한 백성들의 표정, 관리들의 모습 등 세밀한 부분을 관찰할 수 있다. 보통 ‘행행(行幸)’이라고 하면 “왕이 궁궐 밖으로 거동하는 것”을 의미하는 하는데, <화성행행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리움미술관과 일본 등 7곳에서 확인이 되고 있는데, 국내에는 병풍 4점과 족자 2점이, 일본에는 족자 6점이 있다.

<낙남헌양로연도> 속 수원부의 노인과 지팡이.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득중정어사도>에서 매화포를 터뜨리는 불꽃놀이와 주변에서 구경하는 백성을 볼 수 있으며, 아직 화령전이 세워지기 전이라 광장처럼 조성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화성행행도>는 1795년 정조의 원행길을 그리고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수원 화성에 도착한 정조의 공식적인 첫 행사인 수원향교 전배를 그린 <화성성묘전배도>, 문무과별시를 거행하고, 시상하는 장면을 그린 <낙남헌방방도>, 현륭원 전배 이후 수원 화성에서 진행된 야간 훈련을 그린 <서장대야조도>,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진찬연을 그린<봉수당진찬도>, 수원부의 노인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고 비단 1필과 지팡이를 하사했던 <낙남헌양로연도>, 수원에서의 마지막 행사인 활쏘기와 매화포 시연을 그린<득중정어사도>, 수원에서 시흥행궁으로 귀환하는 행렬을 그린 <시흥어환행렬도>, 노량진에서 배다리를 건너 한강을 건너는 <한강주교환어도> 등 총 8폭의 그림으로 제작되었다.

<시흥어환행렬도> 속 시흥행궁의 모습. 화성행궁의 크기와 비교된다.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혜경궁 홍씨의 ‘자궁가교’와 잠시 쉬어가기 위해 가림막을 치고 있는 모습.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재미있는 점은 <화성행행도>를 통해 많은 정보를 알 수가 있는데, 가령 <한강주교환어도>를 통해 배다리 너머 노량진에 ‘용양봉저정’ 혹은 ‘주정소(晝停所)’가 있는데, 정조가 쉬어갔던 공간을 고스란히 남기고 있다. 또한 <득중정어사도>를 통해 매화포를 터뜨리는 불꽃놀이의 그림을 볼 수 있는데, 당시 진전인 화령전이 세워지기 전이라 낙남헌 앞으로 광장처럼 조성된 수원 화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시흥환어행렬도>를 통해 시흥행궁의 모습과 사근행궁, 지지대 고개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할 것이다.

■ 단순한 그림이 아닌 의미를 읽어낼 때 가치를 찾게 되는 <화성행행도>

8일간의 행차에서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 화성을 오가는 시간이 2일씩, 총 4일이 소요가 되었기에 실제 수원에서 보낸 시간은 4일이다. 이 기간에 <화성행행도>에도 나온 것처럼 여러 일정을 소화했던 정조의 일정을 보고 있으면, 그 행동 하나에도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현재 대통령의 공식 일정이 그냥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상징성이 있는 일정들로 정해진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렇다.

그림에 담긴 의미를 읽어낼 때 그 가치를 찾을 수 있는 <화성행행도>. 왕을 구경하는 백성들의 모습, 이를 ‘관광’이라 한다. (사진=수원화성박물관 복제품 촬영)

그럼에도 원행의 가장 중요한 일정이라고 할 수 있는 현륭원 전배의 그림이 그려지지 않은 점은 의아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이처럼 <화성행행도>는 단순히 그림으로 바라보느냐, 의미를 담아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의 깊이는 달라진다. 따라서 우리 역사의 중요한 소재가 될 수 있는 8폭병풍의 그림을 통해 수원 화성의 새로운 모습을 조명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의미가 있다. 또한 정조의 원행길은 수원화성문화제(2018.10.5~7) 기간에 재현이 될 예정이니, 수원의 볼거리로 관심 있게 지켜볼만하다.

김희태 기자  mail@newstowe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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